위대한
《만경대는 산천경개가 매우 아름다운 고장이다.》 (《
온 세상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우러르는 만경대는 예로부터 산천경개가 아름다운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만경대를 찾아보고 그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시를 지은 사람들가운데는 18세기 이름난 문인이였던 홍량호(1724-1802)도 있다.
홍량호는 자가 한사(漢師)이고 호를 이계(耳溪)라고 하였다.
홍량호는 1791년 4월에 평안도 관찰사로 임명되여 평양에 부임하였다.
평양으로 오는것이 처음은 아니였지만 관찰사로 되여 평양으로 오게 되는 그의 마음은 자못 감개무량하였다. 이름난 오랜 고적이 많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평양, 대동강과 모란봉, 을밀대와 련광정.… 그는 내심 몇번이나 외워보았다.
홍량호가 1782년에 사신으로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평양에 이르렀을 때는 겨울이여서 볼수 없었던 수려한 풍경이 오늘 그의 마음을 부풀게 하였던것이다.
장림에 말을 세우고 한동안 모란봉이며 련광정을 바라보던 홍량호는 선창에서 배에서 내리는 길로 대동문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련광정에 올랐다. 릉라도와 청류벽을 감돌아흐르는 대동강의 맑은 물이 덕암에 이르러서는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그우에 장엄하게 솟아있는 련광정.
홍량호는 늘 가지고다니던 벼루를 내여놓고 붓을 휘둘렀다.
《제일루대》(第一樓臺)
련광정은 정녕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첫째가는 루대였다.
활달한 필치로 쓴 그 글씨는 곧 현판으로 되여 련광정에 높이 걸렸다.
홍량호는 평안도에 부임한 기회에 평양이며 평안도의 명승고적들을 다 밟아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묘향산에도 갔고 성천에도 갔다.
묘향산에 가서는 수려한 산천을 구경하면서 임진왜란때에 늙은 몸으로 의병들의 앞장에 섰던 서산대사를 생각하면서 그의 사당에 《수충사》(酬忠祠)라는 현판을 써놓았다.
나라를 위한 싸움에 한몸 바치였던 늙은 스님.
룡이 서린듯 글씨는 살아서 움직이는것 같았고 힘주어 쓴 필획마다에는 기백이 넘치였다.
홍량호는 시인이며 서예가였다. 그는 평생 우리 나라 력대 명필들의 필적을 모아 무려 12책으로 된 《집고진첩》(集古眞帖)이라는 서예작품집을 만들었었다.
홍량호는 어느날 평양의 만경대가 경치좋은 고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만경대라, 경치가 좋다면 가보리라.》
홍량호는 이렇게 마음먹고 일부러 차림새를 갖추고 만경대로 갔다.
만경대에 다달은 그는 산우에 올라가 아래로 흐르는 대동강이며 눈길 아득히 펼쳐진 넓은 들판을 바라보다가 굳어진듯 한자리에 멈춰서서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그의 주름잡힌 얼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미소가 함뿍 어려있었다. 그는 한동안 동서남북을 바라보다가 시 한편을 지어놓았다.
대동강기슭으로 모든 시내 흘러드니
물줄기는 우불구불 무늬를 이루었네
세 길로 갈라진 땅 서해로 잦아들고
만봉우리 드리운 하늘 구름이 비꼈는데
여기저기 돛배들은 끊임없이 오고가고
아득할손 물굽이는 끝간데를 모르겠네
황학루, 악양루가 좋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나라 천리땅 이런 경치 또 있을가
百川東注浿江濆
江勢彎回巴字文
地劃三條西入海
天低萬峀上橫雲
重重帆楫來無盡
漠漠汀洲杳不分
黃鶴岳陽應伯仲
東韓千里更誰群
홍량호는 시를 읊어보았다. 여러갈래 굽이쳐흐르는 강줄기, 섬들, 아득히 펼쳐진 벌판 그리고 벌밖에 솟아있는 봉우리들, 강우에는 돛배들이 오락가락하는데 아득히 바라보이는 물굽이는 끝을 가늠할수 없었다.
사람들은 중국의 황학루나 악양루가 경치좋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만경대 이보다 더 좋은 경치를 어디 가서 찾을수 있단말인가.
홍량호는 시를 다시 몇번 음미해보고나서 만경대의 산천경개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감영으로 돌아왔다.
그는 시 《만경대》의 머리글을 이렇게 썼다.
《만경대는 평양 서남쪽 25리, 동쪽강과 서쪽강이 합쳐흐르는 곳에 있다. 기슭에 우뚝 솟아오른 높은 언덕은 꼭대기가 소반처럼 평평하여 루대를 세울만 하다. 앞으로는 굽이돌아 흐르는 세개의 강줄기를 림하였는데 섬들이 엇갈려 있고 백리 가까이까지 환히 바라보인다. 멀리로 산들이 둘러있고 봉우리들은 기이하고 수려하니 나라안에서 견줄만한 대상이 없다고 말할수 있다.》
홍량호의 시는 칠언률시이다. 홍량호의 시가 결코 만경대의 수려한 산천경개를 다 노래하였다고 할수는 없다.
그러나 만경대의 아름다움을 마음속으로 느끼면서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 명승으로 절절하게 노래한것은 긍정할만 하다.
만경대는 이처럼 오랜 옛날부터 산천이 수려한 명승지로 이름 떨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