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행복과 기쁨의 징표이다.
그래서 생활의 곤난도 밝게 웃으며 이겨낼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 웃음은 걸어갈 앞날을 락관하는 강자의 웃음일것이다.
오늘의 우리 인민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태여나는 순간부터 사회주의제도의 따뜻한 혜택을 받으며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품속에서 우리 인민들은 모두가 언제나 락관에 넘쳐 웃으며 산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웃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며칠전 도서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느라 친구의 집에 갔을 때였다.
유명한 작가였던 그의 할아버지가 쓰던 서재에서 원고며 일기며 애용하던 책들이며를 뒤적이던 나는 할아버지의 사진첩을 찾아들었다. 오래된 사진첩이였는데 여러장의 사진속에서 나의 눈길을 끈것은 할아버지의 젊었을적의 사진들이였다.
왜선지 얼굴색이 하나같이 밝지 못했고 지어 침울해보이기까지 했다. 사진의 날자들을 보니 신통히도 하나같이 해방전의 사진들이였다.
《우리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 새살림을 편 다음해에야 해방이 되였다누만. 사실 해방전사진들은 몇장 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자주 그 사진을 보며 피눈물의 그 세월을 돌이켜보군 했었지.》
나의 속생각을 내짚은 친구가 추억깊은 눈빛으로 이 말을 하는것이였다. 그는 어릴적 할아버지에게서 옛말처럼 들은 해방전생활을 사색의 페지를 더듬으며 두서없이 펼쳐나갔다.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암흑같았던 수난의 그 세월, 망국민의 처지를 말해주는 눈물겨운 이야기와 함께 나는 사진들을 번져나갔다.
점차 사진속의 주인공의 모습이 생기를 되찾고 웃는 모습으로 변했다. 분명 해방후의 사진일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할아버지가 사진들의 여백에 남겨놓은 글들을 살펴보았다.
…《금혁이의 백날을 맞으며 45년 10월》, 《첫 선거표를 받아안고》…
이후의 사진들은 모두가 밝은 모습, 웃는 얼굴들이였다.
해방후에는 물론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나날에 찍은 사진도, 홍안의 시절부터 반백이 될 때까지 수십년간의 생활이 반영된 수십장의 사진들은 모두 자신심에 넘친 락관적모습들이였다.
결국 할아버지의 사진첩은 해방전과 해방후의 양상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그 리유는 너무나도 명백한것이였지만 나는 사람들의 웃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웃을수 있는가?
과연 어떤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에서 오는 진짜 웃음을 지을수 있으며 그것을 자기 생활, 자기 가정, 자기가 속한 사회의 표정으로 고착시킬수 있는가?
존엄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 사람들, 자신들의 억센 힘으로 원쑤들을 징벌하고 삶의 요람을 지켜가며 무궁무진한 창조적지혜로 자신들의 행복과 미래를 가꾸어가는 사람들, 자기의 승리를 굳게 확신하는 정신력의 강자들만이 언제나 웃을수 있는것이다.
조선민족의 파란많은 수난사가, 할아버지의 옛 사진첩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락관과 희열에 넘친 강자들의 웃음을 승리의 전통으로 빛나는 력사와 함께 다시금 더듬어본다.
그렇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