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수필 《우리가 잊고 사는 <집세>》

김일성종합대학 법률대학 김운남
 2017.5.2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학의 교육조건과 과학연구조건, 교직원, 학생들의 생활조건을 원만히 보장해주기 위한 국가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꿈결에도 잊지 못할 주체102(2013)년 10월 9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아직 한일이 너무나도 적은 젊은 과학자들을 포함한 300명의 우리 대학 교원, 연구사들에게 궁전같은 최고급살림집을 무상으로 배려해주시고 살림집을 배경으로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3년반이 지나 이번에는 대학의 전체 교원, 연구사들이 룡남산지구에 일떠선 려명거리의 최상급의 살림집들을 무상으로 받아안았다.

받아안은 사랑과 배려가 너무도 커서, 꿈이 현실로 꽃펴나는 이 땅에서 우리는 그 사랑과 행복, 그 기적에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것은 아닌지, 그래서 너무나 많은것을 잊고 사는것은 아닌지…

사실 우리 나라에서 대다수 교원, 연구사들은 많은 경우 직업특성상 자기의 가정주위환경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들의 사고는 거의 대부분 후대교육과 자신의 연구사업에 집중되여있으므로 경제학자가 아니라면 각종 사용료나 생활필수품의 가격 등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렇다. 당과 국가의 배려속에 너무나도 많은것을 배려받고 사는 우리 교원, 연구사들은 사실 생활의 구석구석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것을 모르고 산다.

자기가 살고있는 집의 가치는 얼마이며 매일 사용하는 물과 전기, 가스의 사용료는 얼마인지 큰 관심이 없다. 당과 국가의 인민적시책속에 행복만을 받으며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나가서 다문 얼마간이라도 생활해보라. 그러면 매일 매 시각 물가변동과 집세, 전기값에 대하여 모르는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것이다.

몇해전에 학술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어느 한 나라에서 실습하게 된 내가 현지에 도착한 다음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숙소예약을 위한 계약서작성이였고 2년후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도 숙소계약의 청산이였다. 그 기간 집세로 지불한 금액은 5천€를 훨씬 넘었다. 그런데 2년만에 다시 가보니 그사이 집세가 적지 않게 올라있었고 다시 3년뒤에 가보니 집세는 또다시 이전에 비하여 배로 뛰여올랐다.

얼마전에 살림집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잔돈이 없다며 울상이 되여버린 안해에게 점잖게 핀잔을 주던 나는 그러면 당신은 사용료가 얼마인지 아느냐고 따져묻는 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자본주의나라에서라면 집세를 못내서 길거리에 쫒겨났을 우리 가정, 그 나라의 이름있는 학자들도 도시중심부에 위치한 100여m2의 살림집은 꿈도 못꾸고있는데 나는 수도의 중심부에 200여m2의 최고급살림집을 소유하고있으면서도 집사용료가 얼마인지 모르고있었다.

세금제도가 철페된 우리 나라에서 주민들은 집세가 아니라 얼마간의 사용료만을 내고있다.

계산해보니 내가 다른 나라에 나가서 생활하면서 지불하였던 한달집세로 지금 살고있는 최고급살림집의 사용료를 수십년간 낼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보다도 우리 당의 크나큰 인민사랑이 어려있는 인민적시책이 얼마나 크나큰가를 새삼스럽게 되새겨보았다.

사랑이 크면 보답도 커야 하거늘, 우리는 그 사랑의 몇만분의 1이라도 보답하였을가, 아니 보답할수 있을가?!

언제나 이 사랑, 이 행복을 심장에 간직하고 분초를 다투어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일해나갈 결의로 심장을 불태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