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초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사회주의강국건설과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성스러운 길에서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각오를 가지고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를 백두의 군마행군길을 통하여 천만의 심장속에 철리로 새겨주신
백두산의 억척의지로 겹쌓이는 만난중하를 단신으로 떠맡아 이기시며 우리 국가의
솟구치는 격정속에 글줄을 더듬어가던 나는 우리 당의 혁명사상과 굴함없는 혁명정신을 알자면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교양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특히 혁명의 지휘성원들이
《백두산대학》
불러볼수록 실로 이름못할 흥분이 가슴을 쳤고 하여 깊어지는 생각을 어찌할수 없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는
나라마다 대학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두산대학》과 같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운명과 전도가 실려있는 그렇듯 성스러운 대학, 제일가는 대학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것이다.
돌이켜보면 백두산악과도 같은 무게를 안고 그 이름도 성스러운 《백두산대학》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한 력사의 첫 기슭은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와 더불어 수수천년을 두고 강국의 소중한 꿈을 조종의 산 백두산에 쌓고 덧쌓아온 우리 민족이였다.
그래서였으리라.
류달리 흰것을 사랑하여 백의민족이라 불리운 우리 민족이 순결무구하고 강의로우며 슬기로운것은 아마도 장구한 세월 흰눈덮인 백두산의 웅자를 숭상하여왔음에 있었으리라.
횡포한 일제의 발굽밑에 짓밟혀 몸부림치던 수난의 시기에도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선 오로지 백두산에 대한 믿음만은 허물리지 않았으니 구름잡아 하늘을 날고 땅을 주름잡아 축지법 쓰신다는 백두산장수이야기를 전설처럼 전해들으며 더더욱 백두산을 우러른 인민이였다.
눈앞에 어려온다.
오로지 칼바람과 강추위, 생눈길의 천신만고를 헤쳐야만 설수 있는 백두의 대지에서, 애국의 더운 피와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으로써만,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않는 억척의 신념과 의지로써만 검증해보일수 있는 백두의 혈전장에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한 구절이 가슴을 친다.
…
그러나 인민만은 봉화를 일으켜
칼을 들고 의병이 일어났고
피를 들고 《3.1》이 일어났다
파업의 굴뚝에 분노 서리우고
《소작》을 안고 주림이 통곡칠 때
또 송화강 물결까지도
왜적의 그림자에 거칠어지고
만리장성도 놈들의 멸시에 맞아
조약돌로 딩굴 때
이 나라의 빨찌산들이 일어나
반항의 기치를 피로 물들이거니
아아, 백두야 네 얼마나
동해의 날뛰는 파도인양
격분에 가슴을 떨면서
바다속 섬나라 저 원쑤를-
하늘아래 한가지 못살 저 원쑤를
피어린 눈으로 노렸느냐!
진정 백두산 줄기줄기 압록강 굽이굽이를 피로써 물들이며
바로 그것이였다.
하거니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온넋으로 백두대지를 안아보라.
백두의 칼바람 타고 펄럭이는 유격대의 붉은 기폭이 선히 보이는듯싶고 귀뿌리 떨어지는것만 같은 강추위속에서 빨찌산들 부르는 《적기가》의 노래소리 쟁쟁히 들리는것 같고 허리치는 생눈길우에 뿌려진 붉은 선혈이 력력히 어려오는듯싶은 백두의 넓은 교정이여.
백두산의 신비로운 웅자가 비껴있는 드넓은 광야 어디에나 빨찌산 그 모습이 영원한 스승으로 서있는 대학, 대를 이어 계승해야 할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영원한 과정안을 안고있는 대학, 바로 이것이 《백두산대학》의 참모습이거니.
하기에
《백두산대학》
강국의 억세인 뿌리가 어떻게 마련되였고 강국의 존엄과 기상이 무엇으로 빛나며 강국의 영광찬 승리가 어떻게 이룩되는것인가를 온넋으로 체험케 하는 더없이 신성한 그 이름을 심장에 안아본다.
가리라 백두산으로!
그렇다.
달리는 살수 없는 영원한 백두의 후손, 빨찌산의 아들딸들임을 페부로 절감케 하고 몸과 마음에 새로운 혁명열, 투쟁열을 백배케 하는 《백두산대학》이 어서 오라 부르나니.
…
한생토록 가리라 대를 이어 가리라
백두산 백두산 내 마음의 고향에
당을 따라 끝까지 갈 영광의 길에
백승을 떨쳐주는 혁명의 성산
…
나의 눈앞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