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수필 《행복에 대한 생각》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학생 김윤성
 2018.8.17.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지향한다.

삶의 환희로움을 한껏 맛보며 부러운것없이 생을 즐기고싶은 갈망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다같이 자리잡고있는 본성적인 감정일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이란 말의 참의미를, 누구나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어떤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다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할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대학에 입학한 우리들에게 담임선생님이 제시한 첫 창작과제였다.

지난날 수많은 문학작품들에서, 각이한 양상의 무수한 도서들에서 너무도 많이 론의되고 해석된 행복에 대한 문제를 왜 굳이 교정의 첫 과제로 제시하였는지 그 깊은 의도를 우린 미처 알수 없었다.

과제를 제시하면서 선생님은 행복에 대한 개념적인 해석이 아니라 실생활을 통해 체험한 자기의 감정을 진실하게 써올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대학에 입학하여 받은 첫 과제였던만큼 나는 야심을 품고 달라붙어 모지름을 썼으나 왜 그런지 생각대로 글이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밤패며 흥분에 떠서 쓴 글도 다음날 아침이면 공허하게만 느껴졌고 제김에 새롭다고 생각했던 견해도 가만히 음미해보면 이미 누군가가 웨친적이 있거나 상식으로 되여버린 범박한 주장이라는것이 감득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TV를 관람하고있던 나의 눈앞에 류다른 제목이 불쑥 펼쳐졌다.

《조선장애자협회 예술소조공연 <세상에 부럼없어라>》

(장애자공연?)

나는 의아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장애자라고 하면 선천적으로, 혹은 다른 외부적환경의 요인으로 육체의 어느 한 부분이 정상기능을 수행할수 없게 된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자라고 하면 타인의 방조와 부축이 없이는 한걸음도 움직일수 없는 사회적보호의 대상으로, 주위사람들의 동정과 보살핌속에서 생을 부지해나가는 불우한 존재로 인식되여있다.

그런데 장애자예술공연이라니?!…

더우기 나의 의혹을 부채질해준것은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그들의 공연제목이였다.

론리상 세상에 부럼없다는것은 행복의 절정에 서있는 사람들만이 당당히 할수 있는 말이다.

자기의 힘과 능력, 주어진 생활조건이 바라는 모든 욕구를 원만히 충족시킬수 있을 때라야 참말로 부럼없다고 자부스럽게 웨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장애자들이란 사실 가슴속에 부러움이 꽉 차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에겐 열정으로 번뜩이는 밝은 눈이 부러울것이고 건강미 넘치는 탄탄한 팔다리가 부러울것이며 사회의 복판에서 다볶이며 흘러가는 정상생활이 못견디게 부러울것이다.

그처럼 무수한 부러움으로 충만된 심장에서 과연 세상에 부럼없다는 환희의 선률이 울려나올수 있을가?!…

맨 처음 무대에 나선것은 다섯명의 가수들과 한명의 피아노연주가였다.

연주가와 가수들은 다 안경으로 눈을 가리운 시력장애자들이였고 가운데 삼륜차를 타고 출현한 소년단원의 하반신은 천으로 가리워져있었다.

한순간 측은한 감정이 심중에 차올랐다.

금시 망울을 터치는 봄계절에 저들은 얼마나 보고싶은것이 많을것인가?

그리고 기나긴 인생길을 삼륜차에 앉아 흘러보내야 할 저 소년은 또 얼마나 대지를 활보하고싶으랴.

육체적고통은 불피코 심리적고충을 산생시키기 마련이다.

인간생활의 정상흐름에 섞일수 없는 괴로움을 과연 저들은 어떻게 감수하며 무엇으로 그 아픈 마음을 달래여갈가.

숙연한 생각에 잠긴 나의 심금을 흔들며 그들이 부르는 《조국찬가》의 노래소리가 은은히 울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첫 걸음마 떼여준

정든 고향집뜨락 조국이여라

누구나 소중한 그 품은 조국

뜻밖에도 한없이 맑고 랑랑한, 예상했던 비관의 색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밝은 선률이 나의 귀속으로 부드러이 흘러들어왔다.

놀랍게도 거기엔 힘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다.

생의 포부를 체념한 한탄의 몸부림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삶을 창조해가려는 벅찬 호흡이, 전진하는 시대의 보폭에 작은 발걸음을 힘껏 따라세우려는 강한 열망이 부르는 노래의 구절구절에 강렬히 맥박치고있었다.

무릇 노래란 부르는 사람의 사상과 감정, 지향의 토로이기도 하며 그 인간자체의 인생관의 표현으로도 되는법이다.

지금 저들은 정든 조국에 대한 애착을 노래에 담아 불행을 천명으로 타고난 자기들의 앞길에 밝은 희망의 대로를 열어준 내 나라에 대한 감사의 정을, 남들처럼 시름없이 뛰놀며 건장한 젊음을 뽐낼수 없는 자기들의 마음속 설음을 가셔주시려 온갖 사랑을 다 기울여주는 우리 원수님에 대한 고마움의 격정을 세상에 대고 마음껏 터치고있는것이다.

그것이 곧 주체조선의 한 공민으로서 능력껏 조국을 위하여 자기를 바쳐갈 결심이고 각오라는것이 귀전에 미쳐오는 맑은 울림을 통하여 심장으로 감득되였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에서 태여났더라면, 내 조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있다면 과연 저들이 이렇듯 환희에 넘쳐 노래를 부를수 있었을가.

아니, 성성한 사람들도 약육강식의 생리속에 울분을 토하며 스스로 생을 단념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선 이런 모습을 도저히 상상조차 할수 없을것이다.

사회주의라는 비옥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더라면 한생 눈물과 고민속에 소중한 삶을 고통속에 보내야 했을, 야멸찬 비웃음과 하대를 숙명으로 감수하며 속절없이 시들어버렸을 저들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끄시는 내 조국의 품에서 친부모도 주지못한 모든 사랑을 되찾고 생의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고있는것이다.

불현듯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던 어느 자본주의나라의 전쟁로병이 남긴 유서의 글줄이 떠올랐다.

《나는 죽는다. 조국을 위해 육체를 바쳤지만 그 희생을 후회하며 얼마 안남은 생을 스스로 끊는다. 돈밖에 모르는 추물들의 서식장으로 변해버린 이 땅이 정녕 나와 나의 전우들이 목숨까지 내대며 지켜낸 그 조국이란 말인가. 아, 통분하구나!》

청춘시절 파시즘을 반대하는 정의의 성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그 로인은 자본주의복귀와 함께 사회를 휩쓴 극심한 생활난 속에 허덕이던 끝에 제 몸의 한 부분과도 같은 삼륜차를 팔아 굶고있는 손녀의 주린 창자를 채워보려고 나섰으나 그마저 사기군들에게 걸려들어 돈한푼 못받고 눈을 뻔히 뜬채 협잡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두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으로 이제 어떻게 살아가며 부모없는 어린 손녀를 무슨 수로 키운단 말인가.

고민끝에 로인은 배고파 우는 손녀의 처량한 모습을 비통하게 쳐다보며 떨리는 손으로 독약을 삼켰다.

자신이 육체를 바쳐 지켜낸 조국을 저주하는 그 로병의 유언장이 락엽처럼 거리에 흩날려 돈의 노예로 변한 후예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있을 때 만시름 잊고 사는 조선의 장애자들이 부르는 조국찬가의 노래소리가 창공을 떨치는 이 경이적인 현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것을 시사해주고있는것인가…

공연은 종목이 바뀌며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활기를 띠였다.

청력장애자들의 랑만적인 무용소품, 시력장애자들의 능란한 피아노독주와 손풍금중주, 요술, 기악, 가야금독주…

마치 예술의 모든 령역을 다 독점해보려는듯 모든 종목들에서 세련된 기교를 발휘하는 장애자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연신 경탄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밝게 웃으며 드넓은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그 모습은 정녕 육체적한계를 초월한 인간기적의 극치였고 그늘없는 내 나라의 밝은 화폭의 축도라고 할수 있었다.

《정말 희한하구나.》

곁에서 할머니가 눈굽을 찍으며 조용히 뇌이는 말이다.

감격에 젖은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두해전 도, 시, 군 인민위원회 대의원선거때 있은 일이 돌이켜졌다.

우리 할머니는 몇해전부터 감각이 마비된 다리때문에 문밖출입을 못하고있다.

육체의 로쇠는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이지만 그것이 닥쳐왔을 때 인간의 심리란 사뭇 괴로운 법이다.

이제는 성쌓고 남은 돌이라는 서운한 마음, 사회와 자식들에게 부담으로밖에 될수 없는 쓸쓸한 생각, 누구나 인생말년에 이르면 이런 침침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것이다.

할머니의 얼굴에선 점차 웃음이 사라져갔고 년로한 육체는 완전히 생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년로보장을 받은지는 오랬어도 선거때마다 조선옷을 떨쳐입고 제일먼저 달려나가 춤을 추던 할머니가 그날은 홀로 눈물을 삼키며 빈방에 외로이 누워있었다.

하지만 일군들이 이동선거함을 들고 집에까지 찾아왔을 때 할머닌 자기도 모르게 행복의 웃음을 지었고 처녀시절로 되돌아간듯 즐겁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노래까지 불렀다.

이제는 나라의 아무런 보탬도 주지못하는 자신을 여전히 선거할 권리를 행사하는 당당한 공민으로 인정해주는, 운신조차 못하는 시들은 인생을 위해 일군들이 찾아오는 이 눈물겨운 현실이 할머니로 하여금 잃었던 생의 활력과 의욕을 되찾게 하였던것이다.

그날, 기쁨에 웃고 고마움에 우는 할머니에게 선거위원회의 일군은 말하였다.

《이건 다 우리 원수님의 뜻입니다.》

길지 않은 말이였으나 이 짧은 표현이 우리에게 준 감동은 얼마나 컸던가.

영광스러운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에는 시름을 품고 사는 사람이 단 한명도 있으면 안된다는 신념을 안으시고 도처에 육아원과 애육원, 양로원을 웅장하게 꾸려주시고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의 그림자로 락인되여온 장애자들도 다 사랑의 한품에 안아 저렇듯 뜨겁게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를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고계시는 그이 아니시고야 누가 늙은이들의 가슴에 서린 고민이며 저 장애자들의 심중속에 쌓인 고충, 철부지 애육원원아들의 마음속그늘까지 일일이 헤아려줄수 있으랴.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어버이로 따르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품속에서 불구로 태여난 사람들이 활기를 되찾고 행복한 삶을 노래하고있으며 한순간 길을 잘못들었던 어두운 운명도, 락엽마냥 시들어가던 황혼기의 인생도 갱생의 빛발을 함뿍 받아안고 새 삶의 활주로를 따라 기운차게 내달리고있는것 아니던가…

어느덧 공연은 절정에 올라 화면에서는 출연자들 모두가 심장합쳐 부르는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장쾌한 노래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드디여 답을 찾았다.

삶의 순간순간 떠밀어주고 이끌어주고 지켜주고 빛내여주는 밝은 태양을 모시고 사는것, 까딱 발을 헛디뎌 깊은 산속 험준한 진창길에 빠져든대도 그 무성한 수림과 두터운 감탕도 강잉히 뚫고들어와 젖어든 몸을 훈훈히 감싸주는 따사로운 해빛의 보살핌속에 사는것!

그 포근한 손길로 만사람의 가슴에서 불행이란 어휘를 말끔히 뽑아던지며 이 땅을 구석구석 그늘없이 비쳐주는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사는 이것이 인류가 바라고 갈망해온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토록 뜨겁고 그토록 열렬한 사랑의 해발아래 사는 우리 인민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내가 찾은 행복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과제장이 아니라 나의 심장속 깊이에 소중히 새겨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