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예로부터 조선의 넋과 기상이 어린 조종의 산으로 일러왔다.
위대한 령도자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우리 혁명의 뿌리가 내린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입니다.》(《
이 나라 강토의 모든 지맥은 바로 백두산에서 뻗어내리였고 우리 민족의 깨끗한 절개와 억센 위용도 백두산을 그대로 닮고있다.
우리 선조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사시절 흰눈을 머리에 떠이고 숭엄히 솟은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그 어떤 풍파도 뚫고나갈줄 아는 슬기와 용맹을 키웠으며 변심을 모르는 티없이 순결한 마음을 간직해왔다.
실로 백두산은 조선민족의 정기와 존엄의 상징이였고 자랑이였다.
하기에 력대로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치고 백두산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수많은 시인, 문사들이 백두산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글로 엮고 시에 담아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백두산을 노래한 고전작품들은 신숙주(1417-1475년)의 《보한재집》(保閒齋集), 김시습(1435-1493년)의 《매월당집》(梅月堂集), 김성일(1538-1593년)의 《학봉집》(鶴峰集), 정문부 (1565-1624년)의 《농포집》(農圃集), 리안눌(1571-1637년)의 《동악집》(東嶽集), 김상헌(1570-1652년)의 《청음집》(淸陰集), 김창협(1651-1708년)의 《농암집》(農巖集), 홍량호(1724-1802년)의 《이계집》(耳溪集) 등과 같은 개인문집들과 중세시가작품들을 종합하여 묶은 작품집들인 《동문선》(東文選),《해동시선》(海東詩選), 《대동시선》(大東詩選) 등과 함경도지방의 여러 읍지들에 올라있다.
민족고전 《청음집》(淸陰集)은 17세기 전반기의 관료이며 문인이였던 김상헌(1570~1652, 자는 숙도, 호는 청음 또는 석실산인)의 시문집이다.
김상헌은 1636년 청나라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국왕을 비롯한 일부 비겁한 통치배들이 적들과 화의를 맺으려고 하자 그것을 극력 반대하여나섰던 척화론자의 한사람이다.
김상헌은 1608년 문과에 합격한 후 경주목사, 연안부사를 거쳐 1624년에는 리조참의로 임명되였다. 그후 그는 형조판서, 대사간, 대사헌 등의 관직에 올랐으나 대바르고 강직한 성품으로 하여 간신들의 미움을 받았고 그로 하여 때로는 강직, 파직도 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김상헌의 강직한 성품은 단순한 성격적기질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 높은 민족적자존심과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었다. 그것은 특히 1636년 병자전쟁시기에 뚜렷이 표현되였다.
당시 우리 나라를 불의에 침범한 청나라침략자들은 곧바로 수도로 달려들었다. 이 위급한 정황에서 비겁한 통치배들은 백성들을 나라를 지키는 싸움에 불러일으킬 대신 적들과의 《화의》를 주장하여나섰다.
그러나 김상헌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적들과는 절대로 타협할수 없다고 하면서 화의론을 일축해버렸으며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중단없이 벌리였다. 이로 말미암아 김상헌은 척화론자로 몰리여 두차례에 걸쳐 6년간 심양에 끌려가 옥중고초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는 적들에게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끝내는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되였으며 그후 좌의정의 높은 벼슬도 지니였다.
김상헌이 이처럼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을 반대하여 싸운 애국적군민들의 투쟁을 직접 목격하고 또 6년간 심양에 끌려가 옥중고초를 겪으면서도 굴함없이 싸워이길수 있은것은 백두산의 억센 기상을 언제나 마음의 기둥으로, 민족의 자랑으로 여긴데 있었다.
언제나 백두산을 마음에 안고 산 김상헌의 애국심은 시 《수성으로 가는 찰방 리중실에게》와 《맏형의 시운을 따라 삼수에 귀양간 조카 광현에게 부치노라》, 《경성에서 관서로 가는 박동량을 바래우며》 등에서 찾아볼수 있다.
수성으로 가는 찰방 리중실에게
장백산앞에서는 오랑캐와의 싸움일어나
동관진의 봉화는 대궐에까지 비쳐왔네
조정에선 변방의 안정대책 세웠거늘
서생을 불러다가 말채찍을 쥐여주네
贈李察訪仲實赴輸城
長白山前虜箭傳
潼關烽火照甘泉
朝廷已決安邊策
喚出書生執馬鞭
* 이 시에서 보이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다.
맏형의 시운을 따라 삼수에 귀양간 조카 광현에게 부치노라
이곳의 북쪽으론 백두산이 솟아있고
강계의 동쪽으론 설한령이 잇달렸네
설한령과 백산은 아득히도 먼 곳이나
그 어디에 있다해도 이곳 도읍 바라보리
敬次伯氏韻寄姪光炫三水謫居
胡天直北白頭山
江界之東連雪寒
雪嶺白山無限際
欲從何處望長安
* 이 시에서 보이는 《백산》이라는 표현도 《백두산》을 가리킨다.
이처럼 우의 작품들에서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세월 우러러보면서 살아온 백두산에 대한 찬양과 숭배, 백두산의 억센 기상을 민족의 넋으로 받아들이고 외적들의 침입을 막고 나라의 안전을 이룩하려는 절절한 념원과 적들과의 싸움에서 지조를 굽히지 않으려는 굳센 의지를 반영하였다.
오늘 백두산은 백두산3대장군의 불멸의 업적이 깃들어있으며 21세기의 위대한 태양을 받들어올린 혁명의 성지인것으로 하여 더욱더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다.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은 오늘
우리는 백두산대국에서 사는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