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주제의 글을 창작할데 대한 과제를 받고 시주변의 어느한 농장마을을 찾았을 때였다.
글귀를 고르며 밤늦도록 장시간 씨름하던 나는 머리쉼을 하려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가슴이 쩡하도록 불어오는 들바람에 쌓였던 피로가 순간에 가셔지는듯 싶었다.
까만 비로도우에 은가루를 쥐여뿌린듯한 희한한 별풍경, 들판의 대교향악과도 같이 유정하게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 그에 반주라도 하는듯 지줄대며 흐르는 논물소리며 갖가지 풀벌레들의 소리,
나는 전야에 차넘치는 한밤의 그윽한 서정에 심취되여 한동안 그린듯 서있었다.
서정.
《조선말대사전》을 펼쳐보면 서정이란 구체적인 생활계기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라고 씌여져있다.
산과 들, 하늘, 땅과 같은 자연 그 자체는 지닐수 없는 인간에게 고유한 서정.
허나 지금 고요히 잠든 이 대지에는 분명 무엇이라 이름못할 깊디깊은 서정이 흐르고있었거니, 과연 그 서정은 어디서부터 오는것인가.
실마리라도 튀여주듯 사색을 깨뜨리며 물관리공처녀가 부르는 청아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엔 종달새 지종
들에는 처녀들 노래
…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기계화작업반쪽에서 《부르릉》하는 뜨락또르발동소리가 터져올랐다.
래일의 작업을 위해 밤새껏 농기계들을 정비하느라 남모르는 수고를 바쳐가는 그곳 농장원들의 땀배인 모습도 그 소리에 실리여온다.
그렇다!
순수한 자연은 서정을 지닐수 없어도 인간이 살며 숨쉬고 투쟁하는 전야에는 이밤에도 뜨거운 서정이 흐른다.
당이 제시한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을 높이 받들고 이 땅에 기어이 풍요한 가을을 안아오기 위하여 이 밤도 잠못드는 우리의 사회주의농촌전야.
해종일 어느 한순간도 조용해본적이 없는 그 전야에서 나에게는 바람결에 설레이는 파아란 벼포기마다며 지줄지줄 흐르는 맑은 물도 그저 무심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밤 끝없는 정서를 불러일으키며 더없이 깊어가는 전야의 서정속에 나는 이 순간도 벼이삭 설레이는 풍요한 가을을 꿈꾸고있을 인민들의 모습을, 날이 밝으면 더더욱 거세찬 열기로 끓어번질 래일의 모내기정경을 그려보았다.